매년 5천곡씩 쏟아지는 트로트 신곡,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의 비결은?

新트로트 열풍

트로트는 어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뽕짝 음악이 나오면 미간을 찌푸리던 젊은이도 많았습니다. 트로트 가수들이 설 무대는 전통시장 공연, 지자체 행사 그리고 전국노래자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을 시작으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행하며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50~60대 어르신들이 주류였던 트로트 무대에 20~30대가 도전장을 내밀며 뛰어들었습니다.
모 대학 행사에 트로트 가수 김연자를 부른다고 하자 난리가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등록금이 아깝다, 아무도 안 갈 것이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운명의 날이 다가왔고 김연자는 모 대학을 말 그대로 쓸어버렸습니다. 엄청난 가창력은 기본이고 신나는 무대매너 그리고 흥겨운 곡으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이후 부산대 학생들은 김연자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버스를 대절하면서 까지 참석해 빛내주었습니다. 김연자는 그 보답으로 모 대학 행사에 다시 출연했고 기부금 1천만 원을 쾌척하며 보답했습니다.

한 곡만 뜨면 평생 먹고사는 트로트 가수

트로트 가수는 히트곡 한 개만 있으면 평생 먹고사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히트원더라고 부르는데 곡 하나로 평생 우려먹으며 음원 저작료, 행사, 방송 등으로 돈을 버는 가수를 말합니다.
故김자옥은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배우로서 입지가 탄탄하던 김자옥이 가수로 변신해 각종 음악방송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가수 이애란은 <백세인생>을 발표한 후 무려 10년 만에 빛을 보았습니다. 25년 간 무명으로 활동하다 <백세인생>이 역주행을 한 후 많은 행사에 섭외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밖에도 박주희 <자기야>, 편승엽 <찬찬찬> 등 원힌트원더 가수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원히트원더로 한곡만 히트를 치면 가수는 안정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가 매번 성공에 대해 고민하며 곡의 퀄리티와 콘셉트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트로트 가수의 히트는 운이라고 믿어졌습니다. 
과연 트로트 가수의 성공은 운이 전부일까요?


가요계를 흔든 미스·미스터 트롯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을 론칭할 때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할머니, 아저씨들의 음악을 왜? 어르신들은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가요무대를 더 좋아하지 않나? 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얼굴이 알려진 가수들도 아니고 무명, 신인, 잊힌 가수들이 나와 트로트에 도전하니 더 식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작 TOP7에 오른 건 새로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예쁘장한 얼굴에 가녀린 몸매를 하고 나타난 홍지윤을 두고 얼굴만 믿고 TV에 나온다는 악플도 많았습니다. 홍지윤은 <엄마 아리랑>을 구성진 보이스로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애엄마 양지은의 가슴 아픈 인생 사연은 추억팔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귀여운 얼굴의 이찬원을 두고 별 볼 일 없을 것이라는 시선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양지은과 이찬원은 외모와 상반되는 강렬한 목소리로 트로트를 열창했습니다.

잘생기고 예쁜데 어리기까지 한 새로운 캐릭터들이 잘 갖추어진 음향 장비와 뛰어난 PD를 만나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가요계를 휘저었습니다. 

잘생긴 신사 임영웅은 엄친아인 줄로 알았는데 누구보다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 우승을 차지한 후 보여준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인기의 범위가 어르신 세대를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가 하면, BTS와 맞먹는 인기로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팬들을 몰고 다니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즐기는 문화가 된 트로트

트로트는 어르신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지나 CD, MP3 그리고 스트리밍 음원까지 접어들면서도 트로트는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어르신들의 즐길거리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단순히 듣는 음악을 넘어서 보고 즐기고 동경하는 팬덤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손주들이 아이돌 가수들을 따랐다니 듯 어르신들은 임영웅, 송가인 콘서트를 가려 티켓팅하는 법을 배웁니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자식, 손주들에게 부탁하는데 요즘 임영웅 콘서트 티켓 구매에 성공해 효도했다는 글이 자주 올라올 정도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임영웅 콘서트를 직관시켜드리는 게 최고의 효도가 된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남진, 나훈아 같은 가수들의 인기가 사그라든 건 아닙니다. 김연자와 같이 어머니 세대의 가수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트로트 열풍으로 등장한 가수들은 기존 가수들의 인기를 빼앗는 게 아닌, 아이돌이 중심이었던 가요계의 파이를 나눠먹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소비력이 강합니다. 젊은 세대보다 쌓아둔 돈이 많지만 돈을 쓰며 즐길거리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니 트로트 가수들에게 한번 꽂히면 많은 소비를 촉발하게 됩니다.

트로트 열풍은 유행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곡들이 매년 양산되고, 지나간 유행곡을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부르며 재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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